아이 팔 접히는 곳이 붉게 일어난 걸 보고, 밤에 잠든 아이 옆에서 “내 유전자 때문인가” 하고 자책해 본 적 있으신가요? 부모 가족력이 있을 때 자녀의 아토피피부염 발병 위험은 분명 올라가지만, 149개 연구를 합친 2020년 메타분석에서 부모 한 명이 알레르기 질환을 가진 경우의 오즈비는 1.30에 그쳤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조금만 뒤져도 “한쪽 부모가 아토피면 50%, 양쪽이면 80%”라는 문장이 출처 없이 돌아다니지요. 그런데 실제로 가족력을 가진 신생아를 태어날 때부터 2년간 추적한 임상시험에서 습진이 발생한 아이는 넷 중 하나였어요.
이 글에서 우리가 하려는 일은 세 가지예요. 첫째, 흩어져 있는 오즈비를 부모가 실제로 읽을 수 있는 절대 확률로 환산해 가족력별 위험표를 만듭니다. 둘째, 유전율 75%와 필라그린 변이를 둘러싼 오해를 데이터로 반박합니다. 셋째, 한국 아이에게 유럽 유전자 통계를 그대로 대입하면 왜 틀리는지를 보여드릴게요.
왜 아무도 아토피 유전 확률을 숫자로 답해주지 않을까

아토피 유전 확률에 대한 질문이 답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정보가 없어서가 아니라, 연구가 내놓는 숫자와 부모가 알고 싶은 숫자가 서로 다른 언어로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 논문은 오즈비를 말하고, 부모는 확률을 묻거든요.
진료실에서 “가족력이 있으면 위험이 높습니다”라는 대답을 듣고 나오면, 정작 손에 남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높다는 게 두 배인지 열 배인지, 그래서 우리 아이가 열에 몇인지를 알 수 없으니까요.
그 공백을 인터넷의 50과 80이라는 숫자가 메웁니다. 이 숫자에 출처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미국 의학 레퍼런스 StatPearls의 아토피피부염 항목은 한쪽 부모가 이환된 경우 50% 초과, 양쪽이면 최대 80%라고 적고 있는데, 자세히 보면 그 대상이 아토피피부염 발병이 아니라 아토피 소인 발생 위험입니다. 천식, 알레르기비염, 식품알레르기까지 모두 포함한 값이 피부 하나의 확률로 옮겨 적히면서 통념이 만들어진 셈이지요.
- 오즈비(odds ratio)
- 두 집단의 발병 승산을 나눈 비율입니다. 오즈비 2.0은 위험이 두 배라는 뜻이 아니라 승산이 두 배라는 뜻이며, 결과가 흔한 질환일수록 실제 위험 배수보다 크게 나옵니다. 절대 확률로 바꾸려면 기저 위험률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에게 필요한 건 승산이 아니라 확률이지요. 그래서 이 글은 논문의 오즈비를 그대로 옮기지 않고, 기저 위험을 가정해 절대 확률로 환산한 표를 직접 만들었어요.
아토피 유전 상담이 늘 공허하게 끝나는 이유는 연구가 승산을 말하는 동안 부모는 확률을 묻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음 절에서 그 승산부터 정확히 꺼내 보죠.
가족력이 위험을 얼마나 밀어 올리는가 — 1.30, 2.08, 3.30

부모 가족력이 자녀 아토피피부염 위험에 미치는 크기는 2020년 Journal of Allergy and Clinical Immunology에 실린 Ravn 등의 메타분석에서 가장 정밀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149개 연구를 모아 119개를 정량 통합한 이 분석은 가족력의 종류에 따라 위험 배수가 확연히 갈린다는 사실을 보여줬어요.
핵심은 “부모가 알레르기가 있다”가 아니라 “부모가 어떤 알레르기를 가졌는가”입니다.
| 부모의 가족력 | 자녀 아토피피부염 오즈비 | 95% 신뢰구간 |
|---|---|---|
| 부모 중 한 명이 알레르기 질환 | 1.30 | 1.15-1.47 |
| 부모 두 명 모두 알레르기 질환 | 2.08 | 1.83-2.36 |
| 부모 중 한 명이 아토피피부염 본인 | 3.30 | 2.46-4.42 |
| 부모 중 한 명이 천식 | 1.56 | 1.18-2.05 |
| 부모 중 한 명이 알레르기비염 | 1.68 | 1.34-2.11 |
| 부모가 여러 아토피 질환 동시 보유 | 2.32 | 1.92-2.81 |
이 표에서 가장 실용적인 정보는 맨 위 세 줄이 아니라 아래 세 줄의 대비예요. 부모가 천식이나 비염을 가진 경우보다, 부모 본인이 아토피피부염을 앓았을 때 자녀의 위험이 두 배 가까이 더 큽니다. 같은 알레르기 계열이라도 피부 질환의 가족력이 피부로 이어지는 신호가 가장 강하다는 뜻이지요.
부모의 질환 개수도 변수예요. 천식과 비염과 아토피를 함께 가진 부모의 자녀는 오즈비 2.32로, 질환 하나만 가진 경우보다 위험이 뚜렷하게 올라갑니다.
그리고 아주 흔한 오해 하나가 여기서 깨집니다. 아일랜드 BASELINE 출생 코호트 1,505명을 24개월까지 추적한 연구에서, 부친에게 아토피 질환 병력, 즉 아토피피부염과 천식과 알레르기비염 중 하나 이상이 있을 때 자녀의 보정 오즈비는 1.99, 모친 병력일 때는 1.70이었어요. 엄마 쪽 유전자 탓이라는 통념과 달리, 부계의 기여가 조금도 작지 않았습니다.
질환을 아토피피부염 하나로 좁히면 이 대비는 더 선명해집니다. 같은 코호트에서 부친이 아토피피부염 본인일 때 24개월 시점 보정 오즈비는 1.85로 통계적으로 유의했지만, 모친이 아토피피부염 본인인 경우는 1.22에 그쳐 유의성이 확인되지 않았어요. 적어도 피부에 관한 한, 아빠의 병력을 빼놓고 가족력을 세는 건 절반만 세는 일입니다.
아토피 가족력에서 무게가 가장 큰 항목은 부모의 성별이 아니라 부모가 앓은 질환이 피부였는지 여부입니다. 이제 이 승산을 확률로 바꿔볼 차례예요.
한쪽 50%, 양쪽 80%가 틀린 이유 — 절대 확률로 바꾸면 넷 중 하나
오즈비를 절대 확률로 환산하면, 부모 양쪽이 모두 알레르기를 가진 경우에도 자녀의 아토피피부염 위험은 20%대 후반에 머뭅니다. 이 계산은 우리가 논문의 수치를 직접 환산해 만든 것이고, 아래 InfoBox에 가정과 한계를 그대로 공개했어요.
환산에 쓴 공식은 단순합니다. 기저 위험 p0을 승산으로 바꾸고, 오즈비를 곱한 뒤, 다시 확률로 되돌리는 방식이에요.
환산식: p = (p0 / (1 – p0) x OR) / (1 + p0 / (1 – p0) x OR)
한계도 분명합니다. 오즈비를 곧바로 위험비로 읽으면 위험이 실제보다 크게 보입니다. 아래 표는 오즈 스케일에서 환산한 추정값이므로 그 자체로 정답이 아니라 보수적인 대조가 필요한 값이며, 그래서 임상시험의 실제 관측값과 나란히 놓고 검증했습니다.
관찰 기간도 함께 봐야 합니다. 아래에서 대조군으로 삼은 BEEP 실측치는 만 2세까지의 누적 발생률이라, 학령기까지 추적하면 더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이제 세 갈래의 서로 다른 데이터를 한 표에 모아 봅니다. 하나는 국제 메타분석 환산값, 하나는 한국 조사 환산값, 하나는 임상시험의 실제 관측값이에요.
한국 수치의 출처는 1995년부터 2022년까지의 ISAAC 설문을 분석해 2025년 Allergy, Asthma & Immunology Research에 실린 Kim 등의 전국 조사입니다. 이 조사에서 2022년 6-7세 아동 4,038명을 분석했을 때, 부모 양쪽 모두 알레르기 질환이 있는 경우의 아토피피부염 보정 오즈비는 3.4로 나타났어요.
| 시나리오 | 근거 | 자녀 발병 위험(집단 평균 추정) |
|---|---|---|
| 부모 모두 병력 없음 | 기저 가정 | 약 10% |
| 부모 중 한 명이 알레르기 질환 | Ravn 메타분석 OR 1.30 환산 | 약 13% |
| 부모 두 명 모두 알레르기 질환 | Ravn 메타분석 OR 2.08 환산 | 약 19% |
| 부모 중 한 명이 아토피피부염 | Ravn 메타분석 OR 3.30 환산 | 약 27% |
| 부모 양쪽 알레르기, 한국 6-7세 | Kim 등 2025년 한국 전국 조사 aOR 3.4 환산 | 약 27% |
| 가족력 보유 신생아, 만 2세까지 | BEEP 임상시험 대조군 실측 | 25% |
| 인터넷 통념 | 아토피 소인 전반 위험치를 피부염 확률로 오전달 | 50-80% |
이 값들은 같은 가족력 조건을 가진 아이들 집단의 평균 추정치이며, 특정 아동의 발병 여부를 예측하거나 판정하는 수치가 아닙니다. 주목할 지점은 마지막에서 두 번째 줄입니다. 앞의 다섯 줄이 계산으로 만든 추정값인 반면, 이 줄만은 사람을 직접 세어 얻은 숫자예요.
영국 16개 기관이 가족력을 가진 만삭 신생아 1,394명을 모집해 만 2세까지 따라간 시험입니다. 보습 개입을 하지 않은 대조군 612명 중 만 2세까지 습진이 생긴 아이는 150명, 정확히 넷 중 하나였어요.
메타분석 환산값 27%, 한국 조사 환산값 27%, 임상시험 실측 25%. 계산 경로가 완전히 다른 세 숫자가 25% 언저리에서 만난다는 건, 이 범위가 우연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반면 50%나 80%는 이 세 경로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아요.
다만 세 숫자의 측정 조건이 완전히 같지는 않다는 점도 짚어둡니다. BEEP의 25%는 만 2세까지의 누적 발생률, Ravn 환산값은 소아기 전반의 위험, 한국 조사는 6-7세 시점의 진단 유병률에서 나온 값이에요. 2023년 Allergy에 실린 BEEP 5년 추적 보고에서, 같은 시험 참가자의 12-60개월 아토피피부염 임상 진단은 대조군 631명 중 178명, 즉 28%로 올라갔습니다. 25%는 상한이 아니라 영유아기의 출발점으로 읽어야 합니다.
물론 반대편 진실도 함께 봐야 공정하지요. 가족력이 있는 아이 열 명 중 일곱은 만 2세까지 아토피 진단을 받지 않았고, 동시에 병력 없는 부모의 자녀보다 위험이 두세 배 높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확률이 이동한 건 맞지만, 판정이 내려진 건 아니에요.
가족력이 있는 아이의 발병 위험은 만 2세 기준 넷 중 하나 안팎이며, 인터넷의 50과 80은 아토피피부염이 아니라 아토피 소인 전반을 가리키는 값입니다.
유전율 75%가 우리 아이 75%라는 뜻이 아닌 이유

아토피피부염의 유전율은 쌍둥이 연구에서 대체로 70-80%로 보고되지만, 이 숫자는 개인의 발병 확률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유전율은 집단을 설명하는 통계이지 한 아이를 예측하는 통계가 아니거든요.
이 오독이 부모를 가장 오래 괴롭힙니다. 유전율 75%라는 문장을 읽고 “우리 아이가 아토피일 확률이 75%”라고 이해하면, 앞 절에서 본 25%와 세 배나 어긋나게 되지요.
- 유전율(heritability)
- 한 집단 안에서 나타나는 형질 차이 가운데 유전적 차이로 설명되는 비율입니다. 집단의 분산을 나누는 개념이므로 개인의 발병 확률로 번역할 수 없고, 환경이 균질한 집단일수록 유전율은 자동으로 높게 계산됩니다.
유전율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면 이유가 분명해져요. 일란성 쌍둥이는 유전자를 100% 공유하고 이란성은 평균 50%를 공유하므로, 두 집단의 질병 일치율 차이를 유전의 몫으로 환산하는 방식입니다.
덴마크에서 임상 진찰로 확인한 두 연구에서 아토피피부염의 프로밴드별 일치율, 즉 한쪽이 아토피일 때 나머지 한쪽도 아토피인 비율은 일란성 0.86 대 이란성 0.21(1986년, 592쌍), 일란성 0.72 대 이란성 0.23(1993년, 812쌍)이었어요. 반면 자가보고에 기반한 대규모 덴마크 연구(2007년, 11,515쌍)에서는 일란성 0.57, 이란성 0.21로 나타났습니다. 여러 연구를 합치면 일란성 0.15에서 0.86, 이란성 0.05에서 0.41까지 폭이 크고, 일란성과 이란성의 일치율 비는 대체로 3배 안팎이며, 이 격차에서 계산된 유전율이 연구별 69-91%, 대략 75% 근처로 모입니다.
여기서 결정적인 대목이 나옵니다. 유전자를 100% 공유한 일란성 쌍둥이조차 일치율이 0.86을 넘지 못했다는 사실이에요. 유전자가 완전히 같아도 한 명은 아토피가 오고 다른 한 명은 오지 않는 경우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뜻이지요.
같은 유전자가 다른 결과를 낳는 자리, 그곳이 바로 환경입니다. 수돗물 경도처럼 사소해 보이는 조건이 피부장벽 지표를 바꾸는 사례는 아토피 수돗물 경수와 피부장벽 변화에서 따로 다뤘어요. 유전자가 확률을 밀어 올려도, 그 확률이 현실이 되는지는 다른 층위에서 결정됩니다.
유전율 75%는 집단의 분산을 설명하는 비율이지 우리 아이가 아토피가 될 확률이 아니며, 일란성 쌍둥이조차 일치율이 100%에 닿지 못했습니다.
필라그린 변이가 있어도 아토피가 안 오는 사람들 — 침투도로 갈리는 지점

필라그린 유전자 변이는 아토피피부염의 가장 강력한 단일 유전 위험 인자이지만, 변이 보유자의 절반 이상은 평생 어떤 아토피 질환도 겪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부르는 이름이 불완전 침투도예요.
2006년 Nature Genetics에 필라그린 기능상실 변이와 아토피피부염의 연관이 처음 보고된 이후, 이 유전자는 아토피 유전학의 중심에 놓였습니다. 필라그린은 각질층에서 천연보습인자와 지질 구조를 만드는 재료이니, 이 단백질이 부족하면 장벽이 새는 것도 당연하지요.
- 침투도(penetrance)
- 특정 변이를 가진 사람 중 실제로 그 형질이나 질환이 나타나는 사람의 비율입니다. 침투도가 100% 미만이면 불완전 침투도라 부르며, 변이가 있어도 발병하지 않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유전학 리뷰가 정리한 실제 침투도는 이렇습니다.
변이를 물려받고도 절반 넘는 사람이 아무 일 없이 살아간다는 겁니다. 필라그린 변이는 아토피의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아니에요.
연구 설계에 따라 위험 크기 자체가 흔들린다는 점도 알아둘 만합니다. 2009년 BMJ에 실린 메타분석에서 필라그린 변이와 아토피습진의 통합 오즈비는 환자-대조군 설계에서 4.78, 가족 기반 설계에서는 1.99로 두 배 이상 벌어졌어요. 같은 유전자를 두고도 누구와 비교하느냐에 따라 숫자가 달라진다는 뜻이지요.
부모 입장에서 이 대목이 실제로 무엇을 바꾸는지가 중요합니다. 아이가 필라그린 변이를 물려받았다 해도 발병은 확정되지 않고, 무엇보다 그 변이가 만드는 결핍은 유전자 바깥에서 메울 수 있는 종류의 결핍이에요. 부족한 천연보습인자와 세포간 지질을 채우는 원리는 보습제 3가지 원리와 하나만 쓰면 더 건조한 이유에서 정리했는데, 그 글이 던져둔 아토피 아동 필라그린 변이 보유율 약 15%라는 숫자의 정체가 바로 다음 절의 주제예요.
필라그린 변이는 위험을 크게 밀어 올리지만 절반 이상에서 발병으로 이어지지 않으며, 유전자가 만든 결핍은 유전자 바깥에서 보충되는 종류의 결핍입니다.
한국 아이에게 유럽 필라그린 수치를 대입하면 안 되는 이유

한국 소아 아토피피부염 환자에서 검출되는 필라그린 변이 비율은 스크리닝 범위에 따라 2.6%에서 15.7% 사이에 그칩니다. 유럽의 대표 변이 R501X는 한국 소아 환자 1,430명 중 1명(0.1%)에 그쳤고, 또 다른 유럽 대표 변이 2282del4는 한국 연구의 검사 패널에 포함되지도 않았습니다. 유럽 통계를 그대로 옮겨오는 순간 계산이 어긋나는 이유예요.
유럽에서는 이야기가 꽤 단순합니다. 기능상실 변이 네 종류가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중등증에서 중증 아토피피부염 환자의 최대 40%가 이 변이를 갖고 있으며, 북유럽 일반 인구에서도 최대 10%가 보유자예요.
한국은 지형이 다릅니다.
| 구분 | 유럽 | 한국 |
|---|---|---|
| 주요 변이 | R501X, 2282del4 등 4종이 90% 이상 | 3321delA, K4022X, S3296X 등 가족 특이적 변이 다수 |
| 환자군 보유율(중등증-중증 81% 코호트) | 최대 40% | 환자 70명 중 15.7%(평균 19.3세, 14종 스크리닝) |
| 소아 환자 검출률 | 환자군에서 높게 관찰 | 1,430명 중 2.6%(3종 스크리닝) |
| R501X 검출 | 대표 변이 | 소아 환자 1,430명 중 1명(0.1%), 유의성 없음 |
| 일반 인구 보유율 | 북유럽 최대 10% | 대조군 862명 중 0.0%(3종만 스크리닝, K4022X 등 나머지 한국형 변이는 미검사) |
숫자를 나란히 놓으면 결론이 저절로 나옵니다. 유럽 아토피 환자의 최대 40%가 필라그린 변이 보유자라는 문장은 한국 환자에게 옮겨 붙일 수 없어요. 한국 소아 환자 1,430명과 대조군 862명을 비교한 연구에서 세 변이를 합산해도 환자군 검출률은 2.6%에 그쳤고, 대조군은 0.0%였습니다.
물론 검출률이 낮은 데는 기술적 이유도 있어요. 필라그린 유전자는 반복 서열이 많아 전체를 읽기 까다롭고, 아시아 인구에서는 가족마다 다른 변이가 흩어져 있어 몇 개의 대표 변이만 골라 검사하면 놓치기 쉽습니다. 실제로 14종을 검사한 연구는 15.7%, 3종만 검사한 연구는 2.6%라는 결과를 냈지요.
하지만 어느 쪽 숫자를 택하든 방향은 같아요. 한국 아토피 아동의 대다수는 알려진 필라그린 변이를 갖고 있지 않으며, 그래서 아토피를 필라그린 유전자 하나의 문제로 부르는 설명은 한국 가정에서 특히 맞지 않습니다.
둘째를 낳아도 될까 — 확률을 알고 나서 할 수 있는 일과 증명되지 않은 일

가족력이 있는 부모가 둘째를 고민할 때 가장 먼저 알아야 할 사실은, 예방을 목적으로 신생아에게 전신 보습을 매일 하는 방법이 대규모 임상시험에서 효과를 입증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피부 감염이 늘었어요.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부모가 다음에 하기 쉬운 행동은 뻔합니다. 가족력이 있으니 태어나자마자 보습제를 온몸에 바르자는 결심이지요. 보습제를 다루는 우리 블로그로서는 반가운 결론일 텐데, 데이터는 그 반대를 말합니다.
만 2세 습진 발생: 보습군 23%(139/598) 대 대조군 25%(150/612), 보정 상대위험 0.95(95% CI 0.78-1.16)로 차이가 없었습니다.
피부 감염: 보습군에서 발생률비 1.55(95% CI 1.15-2.09)로 유의하게 높았습니다.
이미 아토피가 있는 아이의 보습 관리와, 아직 증상이 없는 신생아에게 예방 목적으로 하는 전신 보습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이미 의료진의 안내에 따라 보습을 하고 있다면, 이 결과만으로 임의로 중단하기보다 담당 의사와 상의하세요.
보습제를 소개하는 블로그가 보습제에 불리한 시험 결과를 싣는 게 이상해 보일 수 있어요. 그래도 이 결과를 빼놓으면, 가족력이 있는 부모가 증명되지 않은 예방책에 돈과 시간을 쓰게 됩니다. 관리와 예방은 다른 질문이고, 다른 근거를 요구하지요.
그러면 확률을 알고 난 부모가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 가족력의 종류를 정확히 파악하기 – 부모 중 누가 어떤 알레르기 질환을 앓았는지 구체적으로 정리합니다. 부모가 아토피피부염 본인일 때(오즈비 3.30)와 천식일 때(1.56)는 위험 크기가 두 배 이상 다릅니다.
- 확률을 판정이 아니라 관찰 강도로 번역하기 – 가족력이 있어도 발병하지 않는 아이가 다수입니다. 위험이 높다는 사실은 검사를 서두를 이유가 아니라, 초기 신호를 남들보다 조금 일찍 알아볼 이유로 쓰는 편이 현실적입니다.
- 증상이 없는 아이에게 예방 목적의 개입을 남발하지 않기 – BEEP 시험 결과처럼, 근거가 확인되지 않은 예방 조치는 이득 없이 위험만 더할 수 있습니다. 증상이 나타난 뒤의 관리와 나타나기 전의 예방을 구분합니다.
- 환경 요인은 통제 가능한 것부터 점검하기 – 유전자는 바꿀 수 없지만 물, 옷, 습도, 이유식 도입 시점처럼 손댈 수 있는 변수는 남아 있습니다. 각각의 근거 수준이 다르므로 하나씩 확인하며 접근합니다.
두 번째 단계가 실제로는 가장 쓸모가 큽니다. 아토피가 시작될 때 몸이 먼저 보내는 신호가 있고, 그 신호는 영유아 아토피 초기 신호 5가지에서 월령별로 정리해 두었어요. 가족력이 있다는 사실은 그 신호를 조금 더 일찍 알아차릴 이유가 되지, 아이를 환자로 미리 규정할 이유가 되지는 않습니다.
네 번째 단계에서 근거가 비교적 축적된 영역도 하나 있어요. 알레르기 유발 식품의 조기 도입이 회피 전략보다 나은 결과를 보인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고위험 영아 640명을 무작위배정한 LEAP 시험에서 땅콩을 이른 시기부터 규칙적으로 먹인 군의 만 5세 땅콩 알레르기 유병률이 회피군보다 낮게 관찰됐고, 이 결과가 각국 지침을 바꿨지요. 다만 도입 시점은 아이의 증상과 감작 상태에 따라 다르므로 소아청소년과와 상의해 결정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관련 내용은 아토피 아기 이유식 순서와 조기 도입에서 다뤘습니다.
마지막으로, 시간 축도 함께 봐야 합니다. 한국 6-7세의 아토피피부염 진단 유병률은 2010년 35.4%에서 2022년 13.6%로 크게 떨어진 반면, 12-13세는 1995년 7.1%에서 2022년 17.5%로 올라갔어요. 발병이 몰리는 연령대 자체가 움직이는 중이라, 지금 태어나는 아이의 위험 지형은 우리가 아이였을 때와 같지 않습니다.
둘째를 낳을지 말지에 대한 답은 이 글이 대신 내릴 수 없지만, 적어도 그 결정을 50%나 80%라는 오전달된 숫자 위에서 내리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실제 데이터가 가리키는 자리는 만 2세 기준 넷 중 하나, 만 5세까지 넓혀도 열에 셋 아래이고, 그 하나가 되더라도 관리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까지가 오늘의 결론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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